대학은 무엇을 위한 공간인가.
큰 배움(大學)이 있다던 그곳엔, 책을 읽지 않고 술집을 전전하는 '대학생'답지 않은 사람들만 드글드글해졌다고 한다.
기성 세대들은 학문을 쌓기보다는 취업 스펙에만 목매는 요즘의 대학생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쯧쯧거린다. 토익이나 파고있고, 술이나 먹으러 다니는 애들이 대학생 자격이 있냐며.
그러나 세월이 흘렀고 시대는 변했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없으며 그것은 ‘대학생’의 의미에도 적용된다. 책을 읽지 않고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대학생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고 나에게만 관심을 쏟는 것이 오늘날의 대학생이다.
변화하는 것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변화는 곧 새로운 문화의 시초가 될 것이므로. 누구도 거대한 파도처럼 덮치는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왜 우리는 예전의 대학생들과 변화된 삶을 살고 있으며, 종국에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느냐는 것이다.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붙은 한 재학생의 '자퇴'알림 대자보. 출처는 고대생 커뮤니티 고파스 'whitepeople'님 글에서]
또박또박 적힌 필체가 그녀의 굳은 다짐을 보여주는 듯하다. 대자보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고대생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듯하다, 자퇴할거면 혼자 하지 굳이 알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등등 영양가 없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정치성을 띠지 않는 발언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의 발언이 신빙성을 잃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남을 비판할 때 쓰는 가장 허접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어찌됐든 그녀는 ‘자퇴녀’라는 또 하나의 ‘~녀’ 시리즈를 단숨에 만들어냈고, 자의든 타의든 평가의 객체가 되었다. 두려운 것은 오늘 그녀의 행동이 내일 그녀의 삶을 통해 평가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중에 그녀가 ‘사회적’ 시선으로 보았을 때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의 자퇴는 젊은 날의 객기로밖에 비춰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녀의 ‘사회적’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정치인으로 행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자격증 없는 이가, 대학 졸업장 없는 이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당장 내 밥 벌어먹는 일조차도 힘겨워져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인간적라며 분노하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문제다. 현실은 무엇이든 크고 높게 쌓아 올려 휘향찬란하게 만들어야 어디가서 명함이라도 내밀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름모를 지방의 한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이러한 글을 쓰고 자퇴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사람들의 관심이 지금만큼 했을 것이며, 9시 뉴스에서까지 시끄럽게 떠들어댔을지... 의문이 든다. 그녀는 결국 고대생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버렸기 때문에 주목받은 것이다. 가져야만 버릴 수 있고 일자리가 있어야만 파업할 수 있다.
이 거지같은 세상이 싫다. 바꾸고 싶지만 여기서 내 목소리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나를 뒷받침해줄 배경이 필요하다. 그 배경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필요하다. 권력이든, 돈이든, 명예든, 심지어는 결혼이든. 결국 또 내가 깨부수고 싶기 때문에, 힘을 가지고 싶기 때문에, 나는 그 힘에 굴종할 수 밖에 없는 한낱 작고작은 대학생일 수밖에 없다.
아, 나는 이 지옥같은 경쟁의 트랙을 빠져나올 용기가 있을까. 역시 나는 대답이 없다.




덧글
아름다운 2010/03/11 22:39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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